윤엽이의주접
작성자 김성호님이 써주심.
작성일 2005-01-23 (일)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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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사람,윤엽 전 비평문 -김성호
이윤엽 전 비평문
‘목리, 사람들, 윤엽’ 전, 8월 31일 - 9월 6일, 수원미술전시관

미술의 그릇 안에 담아내는 사람 사는 이야기  
김성호(미술평론가)

전시실과 전시장 그리고 작업실과 작업장
목판화가 이윤엽의 세 번째 개인전은 작가의 작업장을 전시의 형태로 재현해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일견 작가의 창작 공간을 전시장 안으로 옮겨내는 이러한 류 임영선 전, 2000, 4. 11-30, 일민미술관 / 작업실 보고서 전, 2004.1. 7-2,25 사비나 미술관 / 작업공간 열어보기 전, 2004, 7.9-25 인사아트센터/  - 임영선 전은 화재로 폐허가 되었던 그의 작업실과 작품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작업실 보고서전은 참여작가 20명의 작업실 풍경을 선보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작업공간 열어보기 전은 오픈 스튜디오의 개념을 전시장으로 옮겨놓은 듯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의 전시는 전시기획자나 현대작가들 스스로 작가의 작업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색다른 제스처로 기능한다. 기실 이것은 기존의 전시공간을 벗어나 야외나 공장 등 기존 전시공간이 아닌 대안 공간을 형성하며 빠져나가거나 아예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작업을 선보이려는 작가들을 좀 더 다른 양태로 전시장안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대중에게는 구태의 방식으로 전시를 구현하던 율례를 타계해 내고 작가들에게 한층 다가설 수 있는 방식을 선보이기 위한 신선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작업장을 일반 대중이 쉽게 다가가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시로 꾸려진 결과물을 통해서 ‘작가가 추상화되거나 숨어버린 작품’만을 감상하던 관객에게는 이런 양태의 전시, 즉 ‘작가의 실존적 위상을 유추하는 놀이에 초대하는 창작 공간’을 통해서 매우 흥미진진한 경험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형의 전시는 작품으로부터 작가라는 주제의식이 강하게 제기될 수 있는 전시가 된다.
이윤엽은 화성아트센터가 운영하는 미술창작촌인 화성시 동탄면 ‘목리 스튜디오’에서 생활과 작업을 함께 한지 근 3년이 되었다. 그의 애견 빠루와 젊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이웃, 목리 주민들과 더불어 살며, 작업하던 작가 이윤엽이 그의 모든 모습을 전시장에 부려놓았다. 작업장을 빼곡히 매웠던 5단짜리 나무 선반을 모두 옮겨놓고 그 안에 전기드릴, 톱, 칼, 목판, 솟대 완성품과 제작중인 솟대, 목판화의 원판은 물론이고 그가 큰 맘 먹고 구입한 고풍스러우면서도 고물처럼 보이는 대형 선풍기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작업장을 운반하기 위해서 그는 2.5톤 트럭을 빌려야만 했다.
그가 여러 번 한 말이지만 형편상 전시공간에 프레스기와 페치카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한만큼 그의 이번 전시에 있어 작업장 재현은 작가에 관해서 작품이 못 다하는 진솔한 고백과 직설적인 증언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생활과 작업이 한데 어울려 작가의 체취가 담겨있는 그의 작업공간은 그런 면에서 고즈넉한 이미지를 유추케 하는 작업실이라는 용어로 규정되기 보다는 치열한 생존의 터전인 작업장이라는 용어로 규정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가 옮겨 놓은 작업장의 풍경은 그런 면에서 화이트 큐브의 전시실을 생동감 넘치는 전시장으로 변모시켜 내었다.  

나무와 목판위에 새기는 주변의 삶, 더불어 사는 삶의 지평에서
10여년 동안 목판화에 매력을 느껴 묵직한 칼맛 나는 작업을 해 온 그의 작업장이 재현된 전시장은 목판화들로 덮여 있고 그가 의미 있는 생계와 더불어 신명나는 삶으로 꾸려온 솟대 조각들이 가득 차 있다. 어떤 행사기간동안 놀이참여나 실기강좌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장승조각들이나 다수의 종이탈은 이번 전시에서 제외를 시켰음에도 그의 작업장에는 늘 미술과 함께 살아가는 작가와 그 주변인들의 삶의 냄새가 곳곳에 스며있다.  
그의 판화가 드러내는 소재나 주제는 그 제목 어느 노동자의 꿈, 얼굴, 밥그릇에 오줌누는 사람, 망치질 하는 사람, 옆집 신씨 할머니, 무덤 파는 사람, 아버지와 아들 배나무 아래 등 진솔한 인물들을 형상화한 작품이거나 대나무, 찬죽나무, 풀, 도깨비 풀, 톱풀, 맨드라미 등의 식물 혹은 출근하는 새, 코펠 속에 개구리와 버들치 등의 생물이 풍자적으로 묘사된 자연물 이미지는 모두 작가 이윤엽의 주변에서 등장한 존재들이다. 목리에서, 금강에서, 집으로 가는 길, 오리골 눈 오는 날 등 특정 지명이 등장하거나 물리적 공간이 강조된 작업도 그의 삶의 터전이나 여행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작가 주변의 풍경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에서도 살펴보듯이, 그 모두가 작가 주변에서 길어 올려진 것이다. 그의 작업이 추구하는 근간은 미학적 형식 태를 탐구하는 것이기 보다는 삶의 주변의 이미지들을 진솔하게 드러내어 놓고 싶은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지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편린들을 무디게 추상화시키거나 날카롭게 개념화시키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익숙한 언어로 드러내어 높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 ‘재활용 센터에서 일하는 아줌마’라는 작업이 있다. 피트병을 분리해내는 단순 근로자의 전신 이미지를 베니어판을 이어 붙여 형상을 만들어 내어서 이것이 판화로 제작되었을 때에 나무의 재질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표현한 작품이다. 마치 일용 근로자의 고단한 삶이 묻어 나온 듯이 찍혀 있는 목판화는 우리들 주변의 이웃 혹은 우리 가족의 누이를 연상케 한다. 혹은 ‘퇴근길’이라는 작품에서 총총히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삶의 전선에서 분주히 일하고 난 뒤 따뜻한 방구들에 등을 묻을 기쁨을 기대하면서도 소소한 걱정거리를 늘 안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된다. 그의 판화에 새겨진 ‘짜장면을 시키는 사람’이나 ‘때미는 사람’, '테레비를 보는 사람’, 그 모두 우리들과 우리들의 이웃이지 않은가?  작가 주변의 일상, 즉 우리들의 보편화된 일상 이미지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이러한 작품들은 필자가 맨 처음 언급했던 ‘재활용 센터에서.... ’의 작품에서와 같은 매우 특수한 상황 속으로 접근해 있는 이미지들로 매우 심화되고 있다. ‘보온밥통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이처럼 구체화되고 심화된 이미지로,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지난한 몸부림이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업이다.
어떠한 창작 방법론으로도 우리들 삶의 언저리를 어루만지고 이를 감싸 안고픈 작가의 의지를 표현해내는 것에는 무리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별 정체성을 달리 살고 있는 작가에게 있어서 그들 각자에게는 체질적으로 미끄러짐이 없는 혹은 적은 창작의 방법론이 있음을 주지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이윤엽으로서는 목판위에 칼을 들어 그 지평위에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것, 그래서 그 흔적이 작가와 작가 주변의 모습들로 진솔하게 드러내어지는 창작 방법론이 그의 몸에 매우 적합한 듯이 보인다.
그가 최근 어느 좌담 ‘예술하는 빠루- 작가 이윤엽’, 안재홍과의 인터뷰, 뉴스레터, 수원미술전시관, 가을, 겨울 합본호, p.30.
에서 밝히고 있듯이 체질적으로 곧이곧대로 그리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관자에게 생성시킬 수 있는 고루하고 답답한 상황을 나무라는 매체가 희석해 준다고 신뢰하고 있다. 이러한 나무에 대한 신뢰는 그로 하여금 나무조각과 목판화에 대한 애착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된다.  
노동자의 애틋한 삶의 형상이든, 이웃들과의 신명나는 마을축제의 모습이든, 청초한 자연의 이미지이든 그의 목판은 우리 주변을 담는 그릇이 된다. 마찬가지로 야산에 버려진 참나무 조각은 이윤엽에게 있어서는 하늘을 향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여망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솟대로 탈바꿈할 질료가 된다.

무계층적 작가주의
이윤엽은 무엇보다 손으로 일구어내는 미술의 힘을 굳게 신뢰한다. 새로운 경향의 미술유형이 등장하고 그 미학적 의미체계가 값지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은 다른 창작태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손으로부터 생성되는 전통적인 미술창작의 방법론이 체질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어법으로 길들여져 있는 탓이다. 이른바 수고스러운 노동이 빚어내는 손 맛, 손의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는 그에게 있어 컨셉은 실현되지 않은 좋은 미술의 출발일 따름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그 움직임으로부터 결과물이 생성되는 미술을 통해 그를 체질화시킨 셈이다. 그는 작업에의 단상들이 떠오를 때마다 부지런히 미술의 언어로  바꾸어 놓기부터 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다작에의 열의보다는 그 단상들이 중심을 이루는 본인 작업의 큰 핵심을 찾아나서는 일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작가의 체질에 부합하는 작업의 근간을 이제는 더 선명히 부곽하고 싶은 까닭이다.  
손의 맛, 손의 힘을 신뢰하는 그에게 ‘그림 좋은 작가’라는 평은 매우 흡족한 것이 된다. 비교적 전통적인 예술관을 가꾸어 온 그에게 있어 작품 언저리에 작품의 개념이 일렁이기 보다는 작품 내부 깊이 창작자의 냄새가 물씬 담겨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작가주의’에 애착이 많은 것이다.
‘작가주의?’ 그가 추구하는 작가주의는 노동에 의한 손의 기술, 그를 통해 표출되는 미술을 의미하면서 그 미술의 독창성이라는 면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여타의 작업의 유사성과는 대별되는 오리지날리티... 그러나 이윤엽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의도적인 실험과 모색을 거듭하기 보다는 일관된 노동을 통한 미술의 지속 과정 속에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얻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그의 판화에 관한 한, 작가가 지칭하는 ‘소멸법’이라던가 ‘끼워내기 기법’은 판화의 개념상 변형되거나 손상될 수 없는 원판의 개념을 전복시켜내며 독창성을 획득한다. 이윤엽은 다색판화를 만들기 위해서 요구되는 각 색에 해당하는 판 만들기의 의무적 행위를 전면 재검토한다. 7색이 필요한데도 그는 ‘2개의 원판만으로 7색을 만들고 싶다’라는 자연스러운 배반에의 욕구를 통해서 판화에서의 오랜 관습과도 같은 규칙을 깨어 버린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작가는 한색의 판을 찍어낸 후 다음 색의 판을 프레스로 찍어내는 과정 앞에서 다른 원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원판의 외형을 손질한다. 또 다음 색은 같은 원판의 외형을 손질해서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이윤엽은 하나의 다색판화를 만들기 위해서 한 개나 두개의 원판을 끊임없이 상처내고 살점을 깎아내듯 손상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의 판화제작 방식이 상이한 것은 결국 1차 작업이 끝난 원판들로 프린트의 과정만을 남겨두는 일반 판화의 특성과 달리, 프린트 공정 속에 또 다시 원판의 1,2,3차 제작 작업이 끼어드는 것이다. 원판 그 자신의 살점을 깎아내면서 판화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소멸기법은 프레스기를 통과시키기 전에 마치 제례의식 앞에 몸과 마음을 정돈하듯이 다시금 작업의 과정이 투여되면서 판화에의 의미를 아주 새롭게 형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몇 개의 원판만으로 수없이 다량복제해낼 수 있는 판화의 특권을 아주 독창적인 어법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판화는 에디션이 따로 없는 오리지날 프린트 한점들이 유독 많은 편이다. 한점의 판화를 만들기 위해 목판의 원판들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 결코 같은 작품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멸법과 어우러지는 ‘끼워내기 기법’은 판화의 원판 중 특정 이미지의 판을 아이들의 레고 놀이처럼 끼워넣거나 빼어 내서 이들을 서로 다른 색의 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윤엽식의 원판 제작 방법이다. 판화의 특성상 다색의 판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레스기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하는 탓에 각각의 원판이 필요하지만 이윤엽은 이러한 이중으로 판 만들기를 끼워넣거나 빼어내는 방법으로 대치해내면서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베니아판을 전기톱으로 파내면서 드로잉하여 원판을 만들거나 프레스 과정 속에서 팰트 천을 판에 대어 판화지에 수묵의 효과를 유도한다던가 하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은 또 다른 시도들이다. 게다가 그가 그의 블로그 ‘나무망치’에 그 동안 올린 글에 해당하는 판화 제작 작품을 컴퓨터를 통한 프린트물과 글로 제시하고 관객이 참여해서 이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덧글로 달아 낚싯줄에 걸어놓는 전시의 방법론은 기존 판화전의 확장된 실험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실험과 모색이 그의 삶의 언저리로부터 연유한다는 데 우리의 논의가 있다. 생계를 위해 혹은 자발적인 미술운동의 차원으로 행해지는 ‘장승 만들기’에서의 전기톱 사용방법을 판화에 적용시킨다던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과 소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인터넷 상의 블로그 운영을 전시의 형태로 오프라인에서 재현한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손의 맛을 중시하는 이윤엽의 ‘전통적 작가주의’는 끊임없이 독창성 있는 방법모색을 통해 ‘작업의 고급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늘 그 대상을 모든 우리 주변인들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계층적 작가주의’를 지향한다. 일반대중을 늘 작품의 소통자로 설정하고 있는 이윤엽의 내러티브 적 구조가 담긴 미술언어는 이러한 무계층적 작가주의를 튼실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그가 소속하고 있는 민미협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피상적으로 인식해 왔던 민중주의에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연유도 그가 늘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 소수의 패거리 인식에 함몰되지 않고 적극적인 소통매체를 통해서 늘 익명의 관객, 즉 우리 주변인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데서 찾아볼 수 있음직 하다.
우리는 작가의 작업장이 재현된 이번 전시에서 어울려 보이지 않는 작업의 고급주의와 무계층적 작가주의가 작가 이윤엽의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안에서 절묘하게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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